수협, 어업인의 협동조합에서 어촌의 협동조합으로
수협, 어업인의 협동조합에서 어촌의 협동조합으로
  • 수협중앙회
  • 승인 2018.06.28 13:24
  • 호수 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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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모 수협수산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탈리아반도 북부에 자리잡은 트렌토(Trento)는 협동조합의 도시이다. 트렌티노알토디아제주의 주도(州都)인 트렌토의 1인당 소득은 유럽연합(EU) 국가의 평균보다 20%나 높고 실업률은 절반 정도로 낮으며 유럽 내 각종 사회조사에서 생활만족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트렌토는 재정자립도 100%를 달성하며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안정적인 경제활성화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협동조합이 자리잡고 있다.

인구 53만명의 트렌토에서 협동조합 조합원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약 27만명이다. 농업협동조합은 지역 내 전체 농산물 생산 및 유통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신용협동조합은 60%, 소비자협동조합은 전체 유통망의 40%의 시장점유율을 지니고 있다.  트렌토가 처음부터 협동조합의 도시로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1870년에서 1888년까지 18년 동안 트렌토 전체 인구 40만 명 중 약 2만5000여명이 생활고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를 떠나 도시가 위기에 처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를 겪은 뒤 트렌토 지역에서는 인구 유출을 막고 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자립을 이루기 위해 빈농들이 가톨릭 신부들을 중심으로 모여 1890년부터 2년간 생활협동조합과 신용협동조합 설립 운동이 추진하였다. 그 후 1898년에는 조합원 2만명이 활동하는 170여개 협동조합들로 성장하였다.

트렌토의 협동조합은 무솔리니가 통치하던 시기와 제2차대전을 겪으면서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전쟁 이후 지역사회에서 협동조합의 역할이 증대되며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트렌토가 협동조합 도시로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두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 첫째는 지역사회 발전에 협동조합의 중요성에 대해 지방정부와 지역주민이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트렌토의 협동조합은 그 발전 과정에 있어 지방정부의 지원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협동조합 상호간에 긴밀히 협력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트렌티노 협동조합연합회는 500여개의 협동조합 산하조직이 있으며 개별조직은 이익잉여금 중 30%를 연합체에 납부한다. 이 자금은 다시 지역 전체의 협동조합 발전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트렌토의 신용협동조합은 전체 예금액의 95% 이상이 지역사회에 다시 대출함으로써 지역의 자본과 인적자원, 지식 등이 지역 내에서 순환되며 발전해 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발전한 선진국과 우리나라가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는 심화되는 고령화와 양극화이다. 특히 농촌과 어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이로 인한 지역 사회의 붕괴 우려는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는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어촌 사회의 문제를 어촌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촌의 내재적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여기에 가장 적합한 경제조직 형태가 협동조합이다. 

수협은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 이상을 어촌에서 협동조합을 운영하며 어업인의 경제사회적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그러나 지금은 수협의 역할을 단순한 수산물 생산자인 어업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수산업과 어촌사회의 재생을 위한 협동조합으로서의 역할로 활동 범위를 확대시켜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우리나라 어촌에서 가장 조직화되고 경험이 많은 협동조합은 수협이다. 수협이 어촌의 협동조합 체계를 만들어 가는데 중심적인 역할이 되어야 하며 협동조합 조직들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 인력, 운영 노하우 등을 공급할 수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어업인을 위한 협동조합에서 어촌을 위한 협동조합으로서의 변화가 미래에 수협이 추구해야 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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