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 우리바다여행 '거문도'
수협 우리바다여행 '거문도'
  • 배석환
  • 승인 2018.05.03 09:46
  • 호수 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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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 최남단 은둔의 섬 ‘거문도’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해 2시간 남짓 바다위를 달리면 도착하는 거문도. 선착장에서 보면 천천히 걸어도 두어 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섬처럼 보였다. 허나 그건 큰 착각이었다. 여객터미널과 관공서 등 가장 많은 시설이 밀집해 있는 곳은 거문도 안에서 ‘고도’라 불리는 섬이다. 실제로 옛 문헌에는 고도만을 거문도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는 서도, 동도, 고도 세 곳의 섬으로 이뤄진 것을 거문도라 칭한다. 따라서 거문도를 모두 둘러보려면 하루는 부족하다. 바닷가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긴 골목을 들어서니 이색적인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군산과 인천에서 보았던 일본풍 건물이다. 온전하게 보존되어 다른 용도로 쓰이는 건물도 있는가 하면 형체만 남겨진 건물도 여럿이다.

고도는 무인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곳이 영국군의 무단 점령으로 시작돼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시설을 확충해 마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오르막길을 계속 걷다 보니 자그마한 공원이 나온다. 그리곤 유럽 영화에서나 보던 묘지가 발길을 잡는다. 1885년 거문도 사건 당시 영국군 수병들 중 사망한 이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조성됐다. 본래는 아홉 기의 분묘가 있다고 했지만 현재는 세 기만 남아있다.

비가 쏟아진다. 다행히 바람이 잔잔해 우산을 쓰고 거문도 등대로 향한다. 고도와 서도를 이어주는 삼호교를 지나서 수월봉 등산로가 들려주는 빗소리의 하모니에 취하기를 한시간 남짓. 저 멀리 하얀빛갈의 등대가 눈에 들어온다. 파도가 심한 거문도 주변을 100여년 넘게 비추며 아직도 그 자리에 우뚝 서있는 모습에서 거대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거문도에는 거문도 등대외에도 녹산등대, 동도등대가 있다. 그 중에서도 거문도등대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이유는 만들어진 배경도 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광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기암절벽과 바위들이 바닷속까지 보이는 깨끗한 바다와 어우러진 모습이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본래 세 개의 섬으로 모인 거문도지만 지난 2015년 9월 완공된 거문대교 덕분에 서도와 동도가 이어지면서 배로 이동해야 했던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동도는 아기자기한 마을이 띄엄띄엄 모여 있다. 이곳에는 김유선생 사당이 있다.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과거 중국인들이 불렀던 ‘거마도’라는 명칭에서 큰 학자가 있는 곳이라는 ‘거문도’라는 이름이 있게 한 뛰어난 학자다.

작은 섬이지만 예로부터 뛰어난 학자들이 많았던 거문도. 지리적 위치 때문에 열강들의 이해다툼 사이로 들어가 원치 않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소박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던 거문도 주민들에게 어느 날 갑작스레 나타난 영국군 함대는 하늘에서 주는 시련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벅찼을 것이다. 영국은 남쪽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를 견제해야 했고 일본 또한 자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또한 거문도를 눈여겨보게 되고, 덩달아 청나라도 가세하면서 조선 정부에서도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모를 작은 섬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기에 이른다. 결국 아름다운 섬은 영국군이 러시아와의 해전을 준비하기 위해 고도 섬 전체를 요새화했다. 힘없는 조선정부는 청나라와 러시아 그리고 영국정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사이 거문도 주민들은 영국군과의 화합을 선택했다. 물론 영국군이 강압적인 자세로 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려 했다면 힘들었을지 모른다.

이러는 와중에 뜻밖의 행운도 경험했다고 한다. 영국군이 상하이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통신선을 설치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보다 먼저 전화라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또한 다양한 서양문화도 받아들였다.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이 느슨해지자 영국군은 특별하게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됐는데 그래서 테니스장과 당구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일본인들이 영국군이 떠난 고도 섬을 차지해 살면서 일제강점기엔 거문도 주인행세를 하는 통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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