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람이 머무는 신안 ‘가거도’
거친 바람이 머무는 신안 ‘가거도’
  • 배석환
  • 승인 2017.08.17 15:35
  • 호수 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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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포개지는 기분 좋은 날씨다. 바람도 잔잔해 거칠기로 소문난 가거도행 뱃길은 고요하기만 하다.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속해 있는 가거도는 멀다고 느껴지는 흑산도에서도 남서쪽으로 82km나 떨어진 외딴 바다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최서남단 섬이다. 목포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내달려도 4시간은 족히 걸리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섬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옛 지도에도 잘 표시가 되지 않아 6·25 한국전쟁 당시 전쟁의 포화를 빗겨갔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불편한 의자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그렇게 파도와의 싸움이 아닌 지루함을 견디며 가거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황금어장으로 불리는 가거도는 낚시꾼들이 가장 선호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래서 섬을 찾은 대부분의 외지인들은 낚시를 하기위해 가거도를 찾는 것이라 한다.

서남단 섬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섬은 전체적으로 낙후된 모습은 아니었다. 숙소들도 잘 만들어져 있고  슈퍼도 여러 곳 영업을 하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간단히 허기를 달래니 벌써 오후 1시를 훌쩍 넘겼다. 서둘러 섬 주변 탐색을 시작했다. 잠깐 숨 돌릴 틈도 없이 여정을 이어나가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거도의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언제 비바람이 들이닥칠 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여객선이 정박하는 가거도항 선착장에 위치한 마을이 대리마을인데 1구라고도 칭한다. 가거도에는 총 3개 마을이 있다. 대리마을과 항리마을(2구), 대풍리마을(3구)이다. 각 마을은 거리상으로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지만 섬의 특성상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현재는 잘 포장된 길로 자동차를 이용해 다닐 수 있지만 예전에는 걸어 다녀야 했는데 길이 워낙 험해 마을간 왕래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섬이기에 고운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은 없다. 대신 동개해수욕장의 몽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몽돌이 쓸려 내려가는 ‘자그락’ 소리를 마음에 담고 땅재전망대로 향한다.

억새들과 이름 모를 수풀군락 너머로 가거도항과 대리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청명한 가을 날씨와 어우러져 지상낙원의 신비함이 느껴진다. 전망대 이후 등산로는 다소 재미가 없다. 우거진 나무로 인해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대풍리마을을 지나 백년등대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항리마을까지 머릿속엔 가거도의 풍경에 취하며 단숨에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코스였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대풍리마을까지 가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비포장도로와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다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섬의 묘미를 느낄 수 없기에 예전에 만들어진 등산로를 고집했다.

그 결과 맹독을 가지고 있는 독사의 위협을 받고 사람의 발길이 없는 터라 사라진 길을 찾아 헤매다 보니 몸과 마음이 녹초가 돼 버렸다.

가거도가 거친 남성미와 닮았다는 것은 그만큼 섬 전체가 이동하기 거칠다는 말도 된다. 특히 신안군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고봉인 독실산은 그 높이가 639m로 섬을 이루고 있는 산 중에 제주도 한라산, 울릉도 성인봉 다음으로 높다. 



백년등대부터 항리마을까지 가는 길목은 미끄러운 이끼바위의 난관을 넘어서야 한다. 자칫 방심하면 넘어져 골절상을 입기 십상이다. 여인의 치마폭 같은 부드러운 곡선의 능선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항리마을이다. 저녁 준비를 하는 모양인지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항리마을을 끼고 펼쳐진 능선을 섬등반도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지형으로 가거도에서 가장 뛰어난 비경을 자랑한다. 특히 노을이 섬등반도를 물들이면 그 황홀함에 빠져 이곳에 평생 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다. 쉬엄쉬엄 여유를 찾을 수 없었던 가거도의 수행길은 마지막이 돼서야 고단함의 무게를 내려놓게 만들었다. 가장 늦게 해가 지는 가거도의 바다는 노을의 끝자락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직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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