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_황교익 맛 칼럼리스트
특별기고_황교익 맛 칼럼리스트
  • 수협중앙회
  • 승인 2017.06.22 15:15
  • 호수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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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다모래를 먹고 산다”

바다모래를 옮기지 마시라. 그냥 두시라.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다. 당장에 돈 말고 멸치의 반짝이는 비늘이나 맛있는 멸치국물을 생각하시라. 느낌이 잘 오지 않으면 거제나 통영의 바다에 발을 담그고 바다모래를 느껴보시라. 바다 생명체의 파닥거림이 전해올 것이다. 당장이 아니라 우리는 오래오래 아주아주 오랫동안 이들 바다모래 생명체와 함께 살아야 한다.


나는 지금은 창원시로 통합된 마산에서 태어나 자랐다. 마산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등이 본격 가동되기 전의 깨끗한 마산만을 기억하고 있다. 마산의 바다는 내 놀이터였다. 장군천이 바다에 닿는 그 자리에는 고운 모래가 쌓여 있었다. 모래 위로 듬성듬성 큰 돌이 놓여 있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스믈스믈 기어오르며 간지럽혔다. 발목과 종아리도 간지러웠다. 모래만큼 작은 생명체가 내 몸에 붙었다. 투명하여 잘 보이지 않으나 손으로 가만히 바닷물을 뜨면 그 안에서 반짝였다. 넙죽하기도 하고 길쭉하기도 하며 툭툭 튀듯이 움직였다. 갑각류 등의 유생이었을 것이다. 작은 새우도 있었고 작은 물고기도 있었다. 어린 내 눈에는 그 바다모래 세상이 신비한 작은 우주였다.

초등학교 때에는 그 바다모래 위에서 뜰채로 새우를 잡았다. 바닷물 위에서 보면 새우가 보이지 않으나 뜰채를 모래에 바짝 붙여 잽싸게 훑으면 한번에도 여러 마리가 걸려들었다. 먹자고 잡은 것이 아니었다. 낚시에 쓸 미끼였다. 삽이나 호미로 갯지렁이를 잡기도 하였다. 물이 날 때에 더 깊은 바다 쪽으로 가면 모래갯벌이 펼쳐졌다. 모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단단한 갯벌이었다. 여기에 갯지렁이가 많았다. 이렇게 잡은 새우와 갯지렁이로 낚시를 하였는데, 대나무 낚싯대에 찌도 없이 대충 채비를 하였어도 물고기를 못 잡는 날이 없었다. 그 야트막한 바다에서 전갱이며 전어며 숭어며 장어며 노래미며 어린 농어며, 참 많이도 잡았었다.

사춘기 때에 마산항에서 동일호를 타고 거제도로 놀러갔었다. 장목이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 그곳의 모래밭은 길고 넓었으며 모래는 고왔다. 모래밭 위에 온통 멸치를 말리고 있었다. 멸치 덕에 그 동네에서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다는 말이 내 고향에서는 늘 돌아다녔다.

‘당장에 돈이 된다’

최근에 멸치가 잡히지 않는다. 어획량이 30% 이상 줄었다. 멸치는 바다 먹이 피라미드의 바닥에 있다. 멸치를 잡아먹고 사는 전갱이며 고등어며 농어며 도미며 갈치 등등의 생선들도 먹이가 없으니 줄게 되어 있다. 지난해 연안 어획량이 40여 년간의 통계에서 최저치를 보였다. 바다가 단단히 망가진 것이다.

내 놀이터이던 마산만이 망가져나간 것을 나는 목격하였다. 간척사업과 산업오폐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학교 다니느라 잊고 있다가 어느날 문득 찾은 내 놀이터에는 바다모래 위의 신비한 우주 같은 것은 이미 없었다. 모래는 보이지 않았고 반짝이는 생명체도 없었다. 죽음의 바다였다. 그때의 마산 바다를 독수대(毒水帶)라 하였다. 진해와 고성도 사정이 비슷하였다. 많은 어장을 잃었다. 당장에 돈을 벌어야 한다고 바닷가에 공해업체들을 불러들인 결과였다.

남해에서 멸치를 비롯한 여러 물고기가 확 줄어든 까닭이 바다모래를 파내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바다목장 같은 어자원 보호 사업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렇게 일시에 확 줄어든 것은 분명 바다 생태계에 큰 타격이 있었음을 뜻한다. 바다모래는 바다에 사는 온갖 것들이 알을 낳고 어린 생명체를 키워내는 자궁 같은 곳이다. 바다모래를 퍼내니 불임의 바다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의 사정이 이러함에도 바다모래 채취는 멈추지 않고 있다. 4대강 사업 한다고 퍼올린 강모래가 강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굳이 바다모래를 건져내겠다는 것은 당장에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냥 ‘돈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당장에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루살이의 심정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어릴 적 놀던 마산만의 그 모래가 멸치로 대통령을 낸 거제도의 그 모래와 연결되어 있고, 또 거제도의 그 모래가 통영에서 70여 Km 떨어진 남해 배타적경제수역(EEZ) 모래와 연결되어 있으며, 또 그 모래는 태평양 심해의 모래와 연결되어 있고 그 모래가 다시 저 아르헨티나 어느 해변의 모래와 연결되어 있음을 누구든 상상할 수 있다. 지구는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바다가 연결되어 있고 모래가 연결되어 있으니 그 바다모래 위에 사는 생명체도 다 연결되어 있다. 그 생명체를 먹고 사는 인간에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바다 생명 피라미드 맨 아래에 바다모래가 있고 그 맨 위에 인간세상이 있다고 보면 된다. 바다모래를 없애는 일은 인간이 자살을 시도하는 것과 똑같다.

반짝이는 비늘과 맛있는 국물

며칠 전에 부엌에서 멸치국물을 내며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태풍이 불면 말야, 파도가 심하게 칠 것 아냐. 파도가 탁 쳐서 넙데데한 바위에 부딪히면 그 바위 위에 팔딱팔딱하고 무엇이 뛰어. 멸치야. 반짝반짝한 그 멸치가, 아, 얼마나 많은지.” 아내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파도에 휩쓸려 바위에 떨어지는 멸치라니. 믿기지 않겠지만 옛날에 그랬다. 아내는 멸치가 비싸니 아끼라는 말만 하였다.

멸치국물 위로 마른 멸치에서 벗겨진 비늘이 반짝였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바다모래 위의 신비한 작은 우주가 이렇게 반짝였다. 내가 국물을 내어 먹는 것은 바다모래 위의 신비한 우주일 것이다. 바닷가 추억이 없는 아내에게는 멸치국물에서 거두어내어야 할 이물일 뿐이겠지만.

바다모래를 옮기지 마시라. 그냥 두시라.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다. 당장에 돈 말고 멸치의 반짝이는 비늘이나 맛있는 멸치국물을 생각하시라. 느낌이 잘 오지 않으면 거제나 통영의 바다에 발을 담그고 바다모래를 느껴보시라. 바다 생명체의 파닥거림이 전해올 것이다. 당장이 아니라 우리는 오래오래 아주아주 오랫동안 이들 바다모래 생명체와 함께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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