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다 여행] 고흥 백일도
[우리 바다 여행] 고흥 백일도
  • 배석환
  • 승인 2017.01.26 12:19
  • 호수 3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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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글탱글한 굴을 품은 섬, 백일도

▲ 굴을 까고 있는 백일도 어업인
누군 파도를 만들어 내는 게 바다의 일이라고 했다. 고맙게도 여행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바다가 하는 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시름과 걱정을 떨쳐낼 수 있다. 바다는 여유와 한적함을 선물한다. 거기다 푸른 바다에서 잡아 올린 각종 해산물은 우리의 미각을 자극한다.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우리바다 여행지를 소개한다.

눈발이 날린다. 따뜻한 기후 때문에 겨울에 눈 쌓일 걱정이 없는 전라남도 고흥군이지만 바닥을 드러낸 갯벌위로 하얗게 눈가루가 뿌려지기 시작한다. 간간히 햇살이 비춘다. 누군가 저 황량한 갯벌을 녹이기 위해 하늘에 구멍이라고 뚫어 놓은 듯 눈구름 사이로 따뜻함이 내려오고 있다. 아마도 이 한파를 이겨내고 바다로 향하는 어업인을 위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저 멀리 조그만 연륙교가 보인다. 백일도와 육지를 연결시켜 주는 ‘백일대교’다. 사실 대교라 부르기엔 규모가 작은 편이다. 1차선 도로에 사람들이 지날 수 있는 통로는 따로 없어 차가 지나갈 때면 사람들은 대교 난간에 바짝 붙어야 한다. 그럼에도 백일도 주민들에게는 이 다리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다리로 인해 언제든 뭍으로 갈 수 있고 하루에 몇 번 운행하지는 않지만 마을버스도 생겼다.

본래 백일도는 외백일도, 내백일도, 소백일도로 나누어져 있었다. 간척사업으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둑이 만들어지면서 백일도라는 명칭으로 일원화 되었다. 여기에 백일도와 옥금도가 둑으로 이어지고 옥금도는 백일대교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본의 아니게 백일도로 불리고 있다.

따라서 백일대교를 지나 가장 먼저 만나는 섬은 백일도가 아닌 옥금도다. 오래 된 집들이 창고처럼 방치되어 있는 걸로 보아서 다리가 생기면서 대부분 섬을 떠나 육지로 터전을 옮겼나 보다. 사람 구경을 하기 힘든 섬이기에 너무 조용하다. 누군가 일궈 놓은 밭과 선착장의 배들이 버려진 섬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다.

▲ 굴 망태를 옮기고 있다.
▲ 외백마을 투석식 굴밭

구불구불한 해안길을 걷다보면 다리는 아니지만 섬과 섬을 연결한 길이 보인다. 백일도로 들어갈 수 있는 둑이다. 둑을 지나 언덕을 오르니 아담한 어촌마을이 나온다. 외백마을이다. 버려져 있지만 초등학교도 있었고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풍긴다.

도처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린다. 한겨울에 벼농사를 짓는 것도 아닐 텐데 사람들을 계속 실어 나르고 있다. 그 뒤를 따라가 보니 굴 밭이 펼쳐져 있는 여자만이 눈앞에 들어온다. 아직 정오가 되지 않은 시간인데 선착장에 굴 망태가 한가득 펼쳐져 있다. 정유년이 밝은 후 가장 추운 날씨 덕분에 갯벌 군데군데 얼음이 얼어 있는데 도대체 언제 저렇게 채취를 했을까….

▲ 굴을 채취하고 있는 백일도 어업인
▲ 백일대교












주민들은 옹기종기 모여 모닥불에 의지해 굴까는데 열중이다. 아침 일찍 작업을 했나 보다. 깐 굴을 담아 포장한 택배 상자가 여러 개다. 조용히 옆에서 구경하려 했지만 바닷바람의 매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모닥불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거 5년 된 굴이야. 익으면 벌어지니까 그때 먹어”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가 굴 몇 개를 집어 모닥불에 던져 넣으며 한 말이다. 추운 날씨에 타지에서 온 총각이 안쓰럽다 하신다. 시선이 온통 굴에 집중된다. 굴 껍질이 벌어지자 재빨리 탱글탱글한 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짭조름한데 달다. 맛있다.

굴 맛에 반해 계속 머무르고 싶었지만 발길을 옮긴다. 백일도 끝자락 내백마을로 향한다. 여기도 굴이 지천이다. 바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갯벌로 변하고 보이지 않던 길이 바다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내백마을과 근처 섬인 길마도로 이어진 길이다. 사람의 통행을 위한 길이 아니라 봄이면 바지락을 겨울이면 굴을 실어 나를 수 있기 편하게 만든 길이다. 그래서 다시 물이 들면 사라질 길이다.

채취한 굴 망태를 옮기는 발걸음이 부산하다. 겨울 바다는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는 시간이 짧다. 힘겨운 한 숨을 쉬며 굴 망태를 한자리로 옮긴다. 나무를 나르는 지게 양쪽에 갈고리를 만들어 한 번에 두 개씩 옮긴다. 여자들은 힘에 부치기에 남자들의 몫이다. 다시금 따스한 햇살이 백일도를 비춘다. 살을 에는 추위를 참으며 갯벌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하늘도 감동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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