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삶, 바다에 묻다
굴곡진 삶, 바다에 묻다
  • 수협중앙회
  • 승인 2010.05.06 20:52
  • 호수 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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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98금양호 선원들의 인생사

천안함 실종 장병들을 구조하다 침몰한 98금양호 선원들의 굴곡진 삶을 돌아본다. 어두운 곳에서 깊은 파도와 싸우며 살면서도 대접 받지 못한 그들은 죽어서도 차별을 받았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수색작업에 참여한 뒤 어업현장으로 되돌아가던 중 변고를 당한 그들은 9명중 2명의 시신만 수습됐고 7명은 아직도 자신들과 늘 같이했던 쌍끌이 어선과 함께 평생 삶터였던 차가운 바다에 잠들어 있다. 대부분 부모는 물론 배우자조차도 없어 그래서 이들의 죽음은 더욱 쓸쓸하고 가슴 아프다.

# 김재후 선장(48)
경기도 안산 출신으로 20여년 간 배를 탔다. 화통한 성격 탓에 선원들이 잘 따랐다 한다. 침몰 전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색 참여를 주도 했다. 평소 바다와 결혼했다며 억센 바다일을 좋아했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아내와 자녀는 없다. 형, 남동생, 여동생 각 1명이다.

# 김종평 선원(55) 
인천출신으로 98 금양호 선원 가운데 가장 먼저 시신이 발견됐다. 법적인 가족이 없다. 부두에서나 배에서도 맘씨 좋은 사람으로 통했다.
유일한 피붙이 아들은 미국으로 입양을 갔다. 올 말까지만 배를 타고 건설 일을 할 계획이었다 한다.  
# 이용상 항해사(46)
경남 하동출신으로 98 금양호의 항해사로 일했다. 공교롭게도 동생 이원상씨가 금양호 사고대책위원장을 맡아 선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용상 항해사도 곧 뱃일을 그만하고 부산으로 가려고 했다한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누님과 형님, 남동생 2명과 여동생 1명이 유족으로 있다.

# 정봉조 선원(49)
충남 금산 출신으로 부모를 일찍 여의고 유족으로 누나 2명이 있다. 누나들은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1년이 넘었다며 가슴 아파 했다.
사고 현장까지 다녀온 누나들은 동생이 그렇게 멀리까지 나가서 배를 타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 허석희 금양 97호 기관사(33)
전남 해남 출신으로 어머니와 남동생만 있다. 원래 97금양호 기관사이다.
사고당일 천안함 수색을 위해 98금양호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 평소 말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성실하다는 평판이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집과 택배회사를 다니다 19살부터 배를 탔다.
# 박연주 기관장(49)
경남 고성출신으로 부모와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아들이 있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수색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정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결혼은 했지만 거친 뱃일로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다. 그나마 선원 중에서 유일하게 부모님이 생존해 있다.

# 안상철 선원(41)
서울출신으로 배를 탄지 일년 밖에 안됐다. 지난해 1월 마지막으로 봤다는 동생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전에는 인쇄소와 봉제 공장 등에서 일했다한다. 결혼을 하지 않아 자녀가 없으며 남동생 2명과 여동생 1명이 유족이다.

# 유수프 하에파 선원(35) 
인도네시아 출생으로 성실한 선원 생활을 했다는 평가다. 인도네시아에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배를 타면 큰돈을 벌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를 탔다가 변을 당했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힘써줘서 고맙다는 초등학생의 추모의 글이 더욱 애잔하다. 

# 람방 누르카효 선원(36)
인도네시아출신으로 아내와 다섯 살과 세살 된 두 아들을 위해 2년 전 한국에서 취업해 2~3년 후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배를 타면 인도네시아 보다 월급이 10배나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를 탔다. 그러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싸늘한 시신으로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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