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없는 영결식 죽어서도 차별이던가
시신없는 영결식 죽어서도 차별이던가
  • 김병곤
  • 승인 2010.05.06 20:49
  • 호수 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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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인들의 삶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 되길

▲ 6일 영결식에서 희생자를 추념하고 있는 정운찬 총리, 이종구 수협회장,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사진 왼쪽 부터>

천안함 실종 장병 수색을 돕다가 사고로 희생된 98금양호 선원들에 대한 영결식이 시신수습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실종 35일 만인 지난 6일 거행됐다. 지난 1일 정부와 가족대표는 98금양호 희생자를 의사자에 준해 예우하며 위령비 건립, 서훈추서, 장례비를 정부가 부담하는 것에 합의하면서 장례식 준비에 들어갔다.

이번 장례는 어업인을 대상으로는 사상 처음 수협장이 치러졌다. 이종구회장을 장례위원장으로, 전국 조합장들이 장례위원으로 선원들의 마지막 가는 길에 최대한 예의를 지켰다.

그러나 이들 어선원들에 대한 예우는 유가족들에게 이미 깊은 상처를 줬다. 천안함 희생자들에게 쏟아 부었던 지원과 관심에 비교하면 소홀하기 짝이 없었다. 죽음도 차별화했고 정부도 여론도 그들에게는 무관심과 푸대접으로 일관했다.

지난 2일 분향소가 차려지기 전 사망 선원 고 김종평(56)씨의 빈소에는 사람발길 조차 없었다. 장례절차가 확정되고 분향소가 차려진 2일부터 빈약했지만 정·관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분향소를 찾는 정도였다. 5일장의 장례기간 동안 분위기는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특히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지난 4일 뒤늦게 정운찬 국무총리를 비롯 정치권에서 조문했지만 그들은 이미 3류인생에 어둠의 자식들이었고 관심 밖의 일이었다.

선체인양 포기를 조건으로 진행된 장례식은 분명 또 다른 차별이고 차등이다.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되는 보국포장도 뒤늦게 추서했지만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장례 마지막 날인 6일 영결식은 시신도 없이 진행됐다. 9명의 희생자 가운데 2명을 제외한 7명은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그들의 유품으로 장례와 화장 절차를 마친 것이다.

대다수 선원들은 부모도 없고 결혼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녀들도 없다. 유족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형제들과 친척들 뿐이다. 이나마 유족들도 먼 바다에 나가 일했기 때문에 1년에 얼굴 한번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간간히 들려오는 곡소리는 그래서 더욱 구슬프다.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그들은 죽어서까지 분명 정부와 사회로부터 관심받지 못했다.

금양호 선원들의 이러한 처우는 국가의 부름을 받은 숭고한 희생이 주목받지 못하고 약자에 대한 차별이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자화상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이제 희생자들에 대한 예우를 법 테두리에서 논의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적절한 보상은 물론 빠른 시간 내에 의사자 대우를 해야 한다.

국가 유공자에 대한 처우가 살아온 인생과 직업에 따라 다르다면 어느 누가 의로운 일에 참여하겠는가. 우리 모두 이번 일을 계기로 어업인들의 삶을 새롭게 조명해야 할 때다. 그리고 금양호 선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금양호 선원 유가족들은 정부에 △의사자에 준하는 보상 및 의사자 추진 △백령도 위령비 건립 △국립묘지 안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 시민들의 추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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