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다 여행] 흑산도
[우리 바다 여행] 흑산도
  • 배석환
  • 승인 2016.12.22 16:00
  • 호수 3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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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진 노랫가락 흘러 넘치는 흑산도

▲ 사리마을 선착장

누군 파도를 만들어 내는 게 바다의 일이라고 했다. 고맙게도 여행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바다가 하는 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시름과 걱정을 떨쳐낼 수 있다. 바다는 여유와 한적함을 선물한다. 거기다 푸른 바다에서 잡아 올린 각종 해산물은 우리의 미각을 자극한다.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우리바다 여행지를 소개한다.

시린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 날씨가 거칠다. 목포항에서 출발한 흑산도행 쾌속선은 두 시간이 넘게 파도와 씨름중이다. 그로 인해 여행객들은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고 미간을 찌푸리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디선가 낯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미자의 구성진 목소리로 불러낸 <흑산도 아가씨>다. 이 노래가 나온다는 것은 곧 흑산도에 도착한다는 의미다.

코끝을 자극하는 홍어 삭힌 냄새가 진동할 것 같은 섬 흑산도. 허나 예상과는 달리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채취의 보통 섬이다.

▲ 사리마을의 자랑 멸치
길게 늘어선 홍어전문 음식점 골목에는 평일임에도 진짜배기 홍어를 맛보려는 관광객들로 가득 들어차 있다. 보리새싹을 넣어 홍어 애와 끓여낸 ‘홍어앳국’의 내음이 절로 술한잔 기울이게 만든다.

걸어서 흑산도를 둘러보는 것은 가능한 도전이지만 워낙 오르막길이 많은 지형이기 때문에 흑산도를 한바퀴 도는 순환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 혹은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이득이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라면 자연스레 생기는 공간이 있다. 마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곳. 흑산도의 사랑방은 바로 순환버스다.

▲ 흑산도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순환버스
▲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아따 오랜만이네” 버스에 오르고 있는 백발의 노인에게 누군가 말을 건넨다. 그러자 돌아오는 답은 “니는 노인한테 반말 짓거리냐”라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하지만 이내 웃고 만다. 나이가 비슷한 연배이지만 족보상 항렬이 더 높기 때문에 삼촌뻘이란다. 흑산도 순환버스의 사랑방 이야기가 펼쳐지면 여기저기 세상사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흑산도는 곳곳에 작은 마을들이 숨어 있다. 파란하늘과 시퍼런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마을입구에서 걷노라면 수 백 년 전에 사라진 절터의 마지막을 부여잡고 있는 흑산진리석탑을 지나 천년묵은 구렁이가 지나간 듯한 구불길에서 거친 숨을 내쉰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오른 상라산 전망대. 흑산항을 중심으로 흑산도의 절반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찾는 이유가 가슴으로 느껴진다.

흐르는 땀을 식힐 여유도 없이 다시금 올라탄 순환버스. 해변 도로를 한참이나 달리다 보니 <자산어보>의 고향인 사리마을에 도착했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천주교에 연류돼 유배되었을 당시 흑산도 근해 물고기 생태를 조사해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 학술지다.

▲ 간재미가 말려지고 있는 흑산도 마을길
그 당시 아이들을 가르쳤던 서당과 가옥들이 새로이 지어져 잘 정돈돼 있다.  마을 선착장은 칠형제 섬이라 불리는 조그마한 섬으로 둘러싸여 있어 거친 파도를 피해 배를 정박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멸치가 유명하다고 한다. 넓은 선착장 주변으로 마을 어촌계 주민들이 멸치를 가마솥에 직접 삶고 삶은 멸치를 말리는 모습이 오래전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이 이곳에서 느꼈을 재미가 엿보인다.

흑산항에 접안해 있던 배들이 서로를 밀어내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발산한다. 커다란 무엇인가가 항구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다. 아니나 다를까 흑산도의 이방인들을 다시 목포로 실어 나를 쾌속선이 항구로 들어온다. 배안에는 흑산도를 찾은 수많은 인파들이 내릴 차례를 기다린다. 누군가의 떠남이 있으면 만남이 다시금 그 자리를 채운다. 흑산도를 그리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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