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바다여행]김포 대명포구
[우리바다여행]김포 대명포구
  • 김동우
  • 승인 2016.06.16 17:16
  • 호수 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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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현실을 곱씹게 하는 바다


누군 파도를 만들어 내는 게 바다의 일이라고 했다. 고맙게도 여행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바다가 하는 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시름과 걱정을 떨쳐낼 수 있다. 바다는 여유와 한적함을 선물한다. 거기다 푸른 바다에서 잡아 올린 각종 해산물은 우리의 미각을 자극한다.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우리바다 여행지를 소개한다.

김포 대명포구. 어부들이 갓 잡은 싱싱한 수산물이 펄떡이며 당장이라도 바구니를 뛰쳐나올 기세다.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은 좌판에 늘어선 제철 수산물을 보며 흥정에 나선다. 잠시 뒤 살이 오른 갑오징어가 한소쿠리 팔려 나간다. 대명포구는 규모는 작지만 꽃게·대하·밴댕이·주꾸미와 김장용 새우젓·멸치젓 등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김포의 보석 같은 장소다. 하지만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의 영향으로 꽃게잡이는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 이곳 상인들의 볼멘소리다.

어시장을 빠져 나오자 싱싱한 활어회를 즐길 수 있는 횟집과 새우튀김집이 늘어서 있다. 특히 새우튀김은 대명포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대명포구의 볼거리 중 김포함상공원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은 52년간  바다를 지켜오다 2006년 12월 퇴역한 상륙함을 활용해 조성한 수도권 유일의 함상공원으로 다양한 볼거리뿐만 아니라 독특한 체험 공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대명포구의 진짜 가치를 느끼기 위해선 잠시 도보 여행길에 올라야 한다. 포구 끝은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 철책길의 시작이다. 이 코스는 총 14km로 강화대교 앞 문수산성까지 이어진다. 이 코스가 길다면 지근거리에 있는 덕포진을 한 바퀴 돌아오는 덕포진 둘레길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덕포진은 사적 제292호로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길목인 손돌목에 천혜의 지형을 이용해 설치한 조선시대 군영으로,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대와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 진은 임진왜란의 쓰라린 아픔을 경험한 선조 가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당시 덕포진에선 총 15포대가 발견됐으며 약물터를 가포대지역, 원둘터를 나포대지역, 굽두리를 다포대지역으로 부르고 있다. 대명포구에서 시작한 길은 덕포진을 거쳐 파수청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각 포대에 공급할 불씨를 보관하던 장소다. 문헌에 의하면 덕포진 내에는 탄약고, 파수청이 존재했고, 현재 탄약고는 덕포마을에 이전 위치하고 있다.

파수청 바로 너머에는 고려 시대 뱃사공 손돌의 묘가 있고 이 앞바다를 손돌목이라 부르고 있다. 김포지역에선 이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내려 왔는데 이야기는 이렇다.

손돌은 고려 때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피난할 때 뱃길을 잡은 뱃사공인데 험한 물길에 불안을 느낀 왕이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손돌은 죽음에 직면하면서도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마침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왕은 자신이 경솔했음을 깨닫고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했다. 손돌목은 난파 위험지역으로 꼽히며 물살이 매우 빠른 곳이다. 관련 기록을 보면 태조4년(1395)에 조운선 16척, 태종 3년(1403)에 30척, 태종 14년(1414)에 60척이 이곳에서 침몰했단 기록이 있다.

손돌묘 바로 앞은 돈대터인데 김포와 강화를 잇는 초지대교와 대명포구가 한눈에 들어오며 시원한 조망을 선사한다.

역사는 덕포진을 외세에 맞서 싸운 최전선 군영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서해 앞바다가 외세의 침략조업으로 신음하고 있다고 기록하는 중이다. 뻥 뚫린 조망이 그렇게 시원치만은 않은 이유다. 대명포구에 다시 꽃게가 넘쳐나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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