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in수산 창간 1주년의 의미
어업in수산 창간 1주년의 의미
  • 김병곤
  • 승인 2010.03.31 23:33
  • 호수 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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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년 수산언론 분명한 뿌리 찾기 평가

▲ 수협중앙회 1층에 전시된 '수협소식' 원본과 복원판

‘수협소식’원본 복원·전시

어업in수산이 4월 1일로 창간 1주년을 맞았다. ‘어업in수산’은 단순하게 수협과 수산의 소식을 전달하는 매체가 아닌 지난 1963년11월30일 발간됐던 ‘수협소식’지의 정통성을 이어간다는데 의미를 담고 복간형태로 재 창간된 것이다.

‘수협소식’으로 첫 발행돼 ‘수협시보’로 제호를 변경한 수협최초의 정기간행물로 수산전문지 효시다. 수협창립 이듬해에 일반 국민들에게 수협조직을 알리는데 목적을 두고 창간했다. 당시 발간된 수협소식에 대한 정부관심은 지대했다.

창간호에 담긴 내용만 보더라도 수협소식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그대로 표현돼 있다. 당시 국가재건 최고회의의장이었던 박정희 전대통령은 창간에 즈음해 특별담화를 통해 “백만 어민이 잘사는 길은 오직 협동이다”며 “줄기찬 의욕과 꾸준한 노력으로 어업의 후진성을 벗어버리자”고 주장했다. 또 “정부에서 앞으로 수산업육성을 계속 강화할 것”이며 “그 길잡이를 수협소식이 맡아 해줄 것”을 강조했다.

당시 격주간으로 발간된 수협소식은 신문 대판 크기로 수협내부의 소식은 물론 수산정책 홍보와 어업인들에게 유익한 어황 정보, 어촌 관련 연재소설 등을 담았다. 1966년 2월 1일 21호 때 ‘수협시보’로 제호를 변경하고 1971년 12월 31일 지령 174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됐다.

이후 1991년 12월 31일 월간 수협가족이 발간돼 수협소식의 맥을 이었으나 1998년 12월 31일 이 또한 정간됐다. 이처럼 협동운동 상을 구현하고 수산정책을 널리 홍보해 오면서 수산언론을 주도해 왔던 수협소식의 명맥이 끊긴 것이다.

월간 우리바다 이외에 수협에서 발행한 정기간행물이 중지되면서 여러 수산전문지가 수산여론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일선 수협을 비롯 중앙회에서 수협소식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사회적 지위가 약화되는 어업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정보에 취약한 어업인들의 신속한알권리 충족을 위한 수협신문의 필요성이 요구돼 왔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수협은 한국어업인신문사 설립을 위해 2008년 8월26일 제6차 이사회에서 의결을 받았다. 그리고 10월21일 법인설립 등기를 마쳤었다. 그러나 2008년 국정감사에서 신문사 설립 반대로 현재까지 창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창립 47주년에 발맞춰 수협소식지인 어업in수산을 창간한 것이다. ‘어업in수산’ 창간은 수협이 수산계 전체의 역량을 결집하는 매개체가 돼 수산업 위기를 극복해 나갈 어업인의 중지를 모으는 장으로써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또 내부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해 그 시너지 효과를 어업인 권익보호와 복지증진에 쏟아 부어 외부 환경변화에도 흔들림 없는 협동조합을 구현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창간 목적을 천명했다.

이종구 수협중앙회장은 창간사에서 “수협 가족간 소통의 장 역할 뿐만 아니라 수산업계의 동향과 양질의 수산정보를 제공해 어업인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데 보탬이 되도록 함은 물론, 우리 수협을 바라보는 안팎의 시각들도 가감 없이 소개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로 삼도록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조업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어업인부터 수산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부관계자에 이르기까지 쌍방향으로 소통하고 토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어업인들이 보다 이해하기 쉽고 활용하기 편한 살아있는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어업인들의 ‘희망담기’를 표명하며 창간된 ‘어업in수산’은 창간 이념에 부합하기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일차적으로 모태인 수협소식의 뿌리 찾기에 나섰다. 백방으로 수협소식의 원본을 수소문한 끝에 ‘수협소식’ 창간호를 보관하고 있던 김윤덕(85)옹을 찾은 것이다. 수협 창립 당시 공보담당자로 수협소식지 창간 산파역을 맡았던 김 옹은 지난해 4월24일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수협소식지 창간호부터 85호까지 수협중앙회가 영구보존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흔쾌히 기증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바다 전신인 ‘어민지’창간호(1963년)부터 30호(1968년 10월)까지, ‘수협의 노래’원본 릴 테이프도 함께 기증했다.

김 옹은 “수협이 과거 역사를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고 지적하면서 “홍보실에서 수협소식지를 다시 발간한데 대해 늦었지만 매우 잘한 일”이라고 말하며 “과거 수협소식지는 수협소식뿐만 아니라 수산정책 등 모든 수산정보를 소화해 낸 종합전문지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수협소식지의 발굴에 이어 원본 복원 작업도 마무리 했다. 수협중앙회 현관에 원본을 보관하고 복원판은 일반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 1월 1일에는 홈페이지(www.suhyupnews,co.kr)도 개설해 실시간으로 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고 있다.

이렇듯 ‘어업in수산’은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기위해 자료발굴과 함께 어업인들의 알 권리 충족과 건전한 여론 형성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특히 사실보도와 정보전달을 통해 어업인 입장을 대변하고 수산정책에 대한 홍보와 대안제시 기능수행을 위해 노력해 왔다.

창간 1주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어업in수산’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전국 어업인들에게 무료로 1만 여부가 배포되고 있어 기사에 대한 파괴력은 수산여론을 주도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신문이 아닌 소식지의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한계는 향후 ‘어업in수산’이 뛰어 넘어야 할 숙제이다. 현장 어업인들과 정책당국과의 소통창구 역할이 그것이다. 또 위기의 수산업의 극복을 위한 여론 취합 기능도 요구되고 있다.

특히 종국적으로 ‘어업in수산’이 추구해야 할 것은 언론의 순기능을 확대해 수산언론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보도 관행에서 탈피해 대안언론을 제시하는 혁신적 보도체제를 구축해 새로운 수산언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어업in수산’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어업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기사 발굴과 어촌현장과 수산정책 입안자들간의 상호이해의 기반을 조성해 나갈 것이다.

또한 협동조직을 활용한 다양한 의견과 합리적인 보도에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사실전달 차원의 일차적인 기능에서 벗어나 독자와 소통하는 수산언론를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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