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다 여행]벌교
[우리 바다 여행]벌교
  • 김동우
  • 승인 2016.03.24 14:05
  • 호수 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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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 파도를 만들어 내는 게 바다의 일이라고 했다. 고맙게도 여행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바다가 하는 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시름과 걱정을 떨쳐낼 수 있다. 겨울 바다는 여름바다와 달리 여유와 한적함을 선물한다. 거기다 푸른 바다에서 잡아 올린 각종 해산물은 어느 때보다 우리의 미각을 자극한다. 겨울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우리바다 여행지를 소개한다.

벌교, 꼬막향기 나는 문학기행

“알맞게 잘 삶아진 꼬막은 껍질을 까면 몸체가 하나도 줄어들지 않고, 물기가 반드르르 돌게 마련이었다. 양념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그대로도 꼬막은 훌륭한 반찬 노릇을 했다.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 소설가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벌교 꼬막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 벌교는 꼬막을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힘든 고장이 됐다.

▲ 보성여관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허물며 색다른 재미를 준다.
벌교 시내에 들어서면 태백산맥의 감칠맛 나는 표현대로 꼬막을 삶아 소주  한잔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거리 곳곳에는 미각을 자극하는 꼬막 정식을 파는 식당이 줄지어 손님을 유혹한다.

갯벌 내음 가득한 살이 꽉 찬 꼬막을 상상하며 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언제나 전라도의 밥상은 보는 것만으로 넉넉함을 전해준다. 거기에 손맛까지 더해진 갖가지 꼬막요리는 젓가락질에 흥을 더한다. 혀끝에서는 짭조름한 바다향과 진득한 땅의 기운이 하나 돼 설핏 퍼져나간다.

든든히 배를 채우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벌교의 구석구석을 답사하는 문학기행에 나선다. 최근 들어 소설을 읽고 소설의 무대를 체험하기 위해 벌교를 찾는 현장답사 관광객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또 문학기행과 함께 벌교옹기, 천연염색, 차, 용문석 등 전통문화 체험과 채동선 생가, 나철선생 유적지, 부용산공원, 낙안민속마을 등까지 두루 둘러 볼 수 있는 곳이 벌교다.

태백산맥은 픽션이지만 조정래 작가가 실제 생활했던 벌교는 현실 세계에 실재한다. 가만히 오래된 골목을 걷고 있으면 소설이 현실세계로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빛바랜 상점 간판이나 일본식 가옥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것만 같다.

그 중에서도 소설 속 남도여관으로 등장하는 보성여관은 문학기행의 상징 같은 장소로 손꼽힌다. 전형적 일본식 2층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다. 1000원을 내면 잘 꾸며진 여관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데 소설에서 임만수와 그 대원들이 한동안 숙소로 사용하는 장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봄꽃이 수줍게 여관 내부에 작은 정원을 물들이고 “지금이 어느 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잠을 자고 여관밥을 먹어?”란 소설 속 구절이 실제 한 것처럼 스쳐지나간다.

이곳에서 길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소설 속 금융조합으로 등장한 건물이 나온다. 붉은 벽돌 건물은 일본인들이 관공서로 즐겨 쓰던 모습 그대로다. 변함없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 건물은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

▲ 벌교엔 소설가 조정래를 기리는 조형물이 있다.
▲ 벌교 보성여관은 소설 속에서 남도여관으로 나온 곳이다.

그렇게 태백산맥의 향기를 쫓다보면 소화다리에 이른다. 이 다리는 1931년 6월(단기 4264년)에 건립된 철근 콘크리트 다리로 원래 부용교(芙蓉橋)란 이름이었지만 일제 강점기였던 그때가 소화 6년이기도 해 지금은  소화다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소설에서는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겄구만이라…. 사람쥑이는거 날이 날마동 보자니께 환장 허겄구만요.”이란 구절이 나온다.

▲ 벌교 골목은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과거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길은 이제 태백산맥의 문학적 가치와 우리민족의 아픈 과거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는 태백산맥문화관으로 이어진다.

그 사이 서산에 걸린 해는 여자만을 눈시울 아릿한 붉은색으로 가만히 물들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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