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수협소식’ 산파역 김윤덕 옹
[Interview] ‘수협소식’ 산파역 김윤덕 옹
  • 수협중앙회
  • 승인 2010.03.17 15:27
  • 호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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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의 간행물은 그 조직의 공기...수산계 대변 매체로 육성해야"

▲ 김윤덕(84)옹은 한때 방대한 수산관련 정보를 제공했던 수협소식지 창간호에 얽힌 비화를 소개하면서 당시를 회고했다.
“초창기 수협은 어업인과 일반 국민들에게 조직자체를 널리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하지만 창립 초년도에 제도적인 정책마련 등 긴급한 업무 때문에 ‘신문은 무슨 신문이냐’고 모두들 창간을 반대 했었습니다”

지난 1963년 ‘수협소식’ 창간 산파역을 맡았던 김윤덕(84)옹은 당국의 협조부족으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당시를 이같이 회고했다. 창립직후인 그해 5월부터 소식지 창간을 서둘렀지만 사업예산을 정부가 승인해 주지 않았고 인원 보강이 안돼 창간작업이 상당기간 늦어졌다는 것이다.

김 옹은 “우리수협보다 한해 빨리 창립한 농협은 타블로이드판으로 소식지가 발간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농협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 신문대판으로 판형을 결정하고 우여곡절 끝에 신문을 만들어냈다”며 “창간호가 나왔을 때 정말 자손 귀한 집에 아들이 태어난 기분 이었다”고 당시를 반추했다.

“그때만 해도 수산전문지를 만드는데 자료들이 너무 궁핍했고 심지어 소식지에 쓸만한 사진 한 장이 없었지만 하나하나 챙기는 것이 큰 보람이었다”고 말하는 김 옹은 “하지만 기획, 취재, 기사작성, 편집 등 신문제작과정이 모두 창작활동인데 주변에서 단순 사무관리 업무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 아쉬었다”고 회고했다.

‘어느 조직이나 활자화된 간행물은 그 단체의 살아있는 공기입니다. 소식지를 통해 조직구성원들에게 소속감과 일체감을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라는 김 옹은 “그동안 수협소식지가 폐간돼 섭섭하고 허전했었다”며 “어업인과 수협인, 수산 관계자들이 기다리는 양질의 소식지로 만들고 나아가서 수산계를 대변할 수준의 언론 매체로 육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옹은 자신이 참여해서 만들었던 수협소식 창간호부터 127호까지 원본을 지금껏 보관해오고 있으며 우리바다의 전신인 ‘어민’지와 ‘수협의 노래’ 원본도 소장하는 등 초창기 수협의 역사를 소중하게 간직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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