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바다 여행] 통영 연화도
[우리 바다 여행] 통영 연화도
  • 김동우
  • 승인 2016.02.04 13:51
  • 호수 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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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닮은 연화도의 용머리해안은 용의 앞발 모양이라고 한다. 


누군 파도를 만들어 내는 게 바다의 일이라고 했다. 고맙게도 여행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바다가 하는 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시름과 걱정을 떨쳐낼 수 있다. 겨울 바다는 여름바다와 달리 여유와 한적함을 선물한다. 거기다 푸른 바다에서 잡아 올린 각종 해산물은 어느 때보다 우리의 미각을 자극한다. 겨울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우리바다 여행지를 소개한다.


바다 위에 연꽃 피어 오른 전설의 섬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배에 올라 한 시간, 배는 연화도(蓮花島) 선착장에 닿는다. 길을 잡아 나서기 전 맑은 옥색 바닷물이 반짝이는 햇빛을 튕겨내는 모습에 잠시 여유를 갖는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이란 게 이제야 실감된다. 어느새 등 뒤로 타고 온 여객선이 욕지도를 향해 꼬리를 빼고 돌아선다.

연화도 여정은 선착장에서 10여분 거리 연화사에서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반대로 등산로를 타고 마지막에 연화사에 들러도 된다.

연화도 중심에 들어선 연화사는 하동 쌍계사 조실(사찰 최고 어른)이었던 고산스님이 1998년 창건한 신생사찰이다. 당시 고산스님은 여러 섬들을 둘러보던 중 연화도인과 사명대사의 수행터를 찾다가 우연히 연화봉을 적시며 흐르는 맑은 샘을 발견했고 이 샘터를 마을 주민으로부터 매입했다. 그리고 틈틈이 여비를 모아 10여년 동안 전답 등 2만여 평을 사들여 가람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고산스님은 스리랑카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가져와 연화사 석탑에 봉안했다고 한다.

연화도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건 500여년 전 폭군 연산군의 불교탄압을 피해 3명의 제자와 함께 연화도로 건너온 연화도사가 연화봉 자락에서 도를 닦으면서다.

그러다 연화도사가 입적하자 제자들과 주민들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수장했다. 그런데 바다에 잠겼던 연화도사의 시신이 한 송이 연꽃으로 변해 물 위에 떠올랐다고 한다. 연화도란 섬 이름도 그때부터 생겼다. 연화도사가 입적하고 제자들도 섬을 떠나게 됐다. 그리고 서산대사의 제자이자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사명대사가 이곳에 들어와 수도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사명대사의 누이 보운, 출가 전 사명대사와 정혼했던 보련, 사명대사를 사모하다 비구니가 된 보월 등 세 승려가 연화도에서 득도했다고 한다.

이들을 모두 아울러 ‘자운선사’라 부르고 있는데 재미있는 건 3명의 비구니 스님이 임진왜란이 발발할 것을 예측하고 이순신 장군에게 거북선 건조법 등 대책을 알려줘 옥포해전과 한산도해전의 대승을 도왔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이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전설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터가 좋고 주변 풍광이 수려한 연화도는 불교신도들의 순례 장소로 자리를 잡았다.

연화사에서 다시 능선을 따라가면 삼층석탑, 사명대사가 수도했다는 토굴터를 지나 보덕암에 당도한다.

연화도 명물 출렁다리는 아찔함을 느낄 수 있어 여행자들이 꼭 찾는 장소다. 
연화봉 남쪽 가파른 비탈에 자리한 보덕암 해수관음보살상과 통영팔경 중 하나인 용머리해안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연화 제1경이라고 해보 과언이 아닐 만큼 아름답다. 특히 용머리해안 4개 바위섬은 망망대해로 헤엄쳐나가는 용을 닮았다고 하는데 바다와 맞닿은 뾰족한 바위들이 진짜 용의 발톱을 연상시킨다. 풍수지리상 연화도는 용의 형상이고 그중 용머리해안은 힘차게 몸을 뒤틀며 헤엄치는 용의 앞발에 해당된다고. 풍경을 배경 삼아 어렵지 않게 연화봉(212m)에 오르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연화도 전경은 물로 멀리 욕지도, 한산도, 미륵도 등 보석처럼 푸른 바다 위에 솟은 비경은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절경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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