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직은 ‘자율과 독립’을 기본으로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경영체다. 그래서 협동조합은 외세에 흔들려서는 안 되며 조직의 설립과 운영 모든 것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이는 협동운동의 지고지순한 진리다.
헌법에서도 ‘농어민 자조조직 육성의무’와 ‘자조조직의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수협법에서도 “국가와 공공단체는 조합과 중앙회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아니된다”고 헌법이 정해놓은 자율성 보장의무를 명확하게 반영해 놓고 있다. 더구나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7대 원칙 가운데 4원칙에서도 ‘자율과 독립’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7대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ICA에 가입 조차할 수 없게 돼 있다. 이처럼 협동조직 운영에 협동, 자주, 자립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헌법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협동조직은 정부의 입김에 너무 좌지우지된다.
그동안 정부는 협동조합에 대해 통합과 분리를 주도하고 조직개편에 늘 간섭해 왔다. 또 협동조직 지도자의 임기를 마음대로 조정하고 연임을 금지하는 등 협동조직의 민주적 경영과는 이반되는 비민주적인 일을 자행해 온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수협은행 자회사 분리를 위해 수협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 자본규제에 부합하는 자본구조로의 전환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빌미로 협동조직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는 사안을 입법 예고 했다. 수협중앙회 감사위원회와 조합 감사위원회를 통합해 감사기구를 단일화한다는 것이다. 명칭만 놓고 보면 비슷하지만 실제 역할은 전혀 다르다.
중앙회 감사위원회는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 견제와 감시기능을 하는 독립기구다. 상법과 은행법, 수협법에 근거해 각 사업부문으로부터 집행되는 업무를 적법하게 이루어지는 가를 독립적인 지위에서 판단하고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사한다. 이에 반해 조합 감사위원회는 회장 소속으로 회장 권한을 위임받아 조합 업무를 감사하는 수협법의 특별규정을 둔 독특한 형태의 감사기구다. 중앙회 감사위원회는 수협 설립과 함께 태동했지만 조합 감사위원회는 2001년 신설됐다.
“중앙회는 회원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하며 ‘조합감사위원회’를 두어 조합원에 대한 권익보호와 삶의 질 향상을 도모 한다”는 목적으로 설치됐다. 초대 위원장은 수협출신이 맡아 틀을 잡았다. 이후 해양수산부출신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두 명의 위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도중하차했다. 감사위원회도 정부가 가만두지 않았다. 조합장들이 직접 선출하던 상임감사 제도를 2005년 위원회로 바꾸면서 해수부 출신이 낙하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두 위원회를 통합하자는 정부 법안이 이 같은 맥락에서 조감위와 감사위원회 업무를 통합해 해수부가 자리를 차지하려는 저의가 있는 거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입법안에는 감사위원회 위원은 정부추천이 3명, 중앙회 추천이 2명이다. 이는 다분히 정부인사 중에서 감사위원장을 선출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렇듯 두 감사위원회의 통합은 설립 목적은 물론 역할이나 법 논리에서도 벗어나 있다. 경영진을 감사하는 감사위원회가 회장의 지시를 받아 조합을 감사해야 하는 업무의 혼선이 야기될 수도 있다. 농협역시 현재 두 감사위원회가 이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농협과 똑같이 수협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현행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지당하다. 혹시 현재 퇴직을 앞둔 해수부 공직자의 퇴직 후 자리보전을 위한 감사위원회 통합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기우이길 바란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말처럼 정부는 협동조합에 협동 조합적 가치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수협은 분명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인 결사체다.
저작권자 © 어업in수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