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특집 ‘테마’가 있는 바다여행지 4선(1)
여름특집 ‘테마’가 있는 바다여행지 4선(1)
  • 김동우
  • 승인 2015.07.23 14:34
  • 호수 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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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 ‘한국의 갈라파고스’를 가다

▲ 연평산에서 바라본 굴업도 전경.


1년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이 찾아왔다. 소금기를 머금고 나풀대는 바닷바람은 그 자체로 휴식이고 여유다. 푸른 바다 이곳저곳에 희끗희끗 하얀 포말이 그림을 그린다.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근심과 걱정이 스러진다. 휴가를 맞은 사람들에게 바다는 사람·자연·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금만 귀 기울이면 우리바다의 진짜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웃음이 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진짜 살아 있는 이야기 말이다.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우리바다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여행지 4곳을 엄선해 소개한다.

덕적도를 출발한 배는 문갑도, 선갑도, 울도, 지도, 백아도 등을 거쳐 2시 남짓 걸려 굴업도에 닿는다(홀수날 덕적도~굴업도는 1시간, 짝수날은 2시간 소요). 굴업도란 이름은 사람이 엎드려 일하는 것처럼 생겼다해 붙여졌다.

한적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감도는 굴업도 선착장 분위기는 과거 민어 파시가 열렸던 곳이란 역사적 사실을 까맣게 잊게 만든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굴업도는 어업전진기지로 수천 명이 북적이던 섬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일본인 순사가 파견되기도 했다. 그랬던 섬은 1994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 부지로 지정되면서 한차례 홍역을 치른다. 최근 들어선 굴업도 땅의 98%를 소유하고 있는 모 대기업이 골프장을 짓겠다며 또 한 번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 굴업도 코끼리 바위.
학계에선 굴업도가 약 8000만~9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전 세계에 1만 마리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검은머리물떼새와 천연기념물 매와 황새, 황구렁이, 먹구렁이 등이 서식하는 자연의 보고가 바로 굴업도다. 이 때문에 흔히 이 섬을 ‘한국의 갈라파고스’라고 칭한다. 국내 섬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곳이란 이야기다. 섬 전체가 셀 수 없는 시간의 켜가 만들어 놓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민박집에 짐을 푼다. 손맛 좋기로 유명한 서인수 전 이장님댁 점심은 바다와 산의 향을 그대로 입속에 풀어 놓는다. 식당이나 매점 등이 없는 굴업도 여행에서 이 식사는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본격적인 섬 탐방에 나선다. 목기미해수욕장은 양쪽으로 바닷물이 들어차있어 꼭 동해 화진포를 연상시킨다. 해변에는 속살이 드러난 을씨년스러운 전신주가 살풍경을 자아낸다. 전신주를 따라 가면 목금이 마을이 나온다. 30여년 전 작은 마을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처연히 흔적만 남아 있다. 목금이 마을 왼쪽으로는 연평산(128m)이, 오른쪽으로는 덕물산(138m)이 각각 연평도와 덕적도를 바라보며 오뚝이 솟아 있다. 해안사구를 지나 네 발로 기어올라야 간신히 정상에 닿을 수 있는 연평산에 오른다. 조망이 열리자 굴업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새 열기를 담은 땀은 노글노글한 바람에 실려 날려간다. 산을 내려오며 코끼리바위를 찾는다. 이 바위는 파도 때문에 형상이 깎여 가운데 구멍이 생겼고, 이후 염풍화까지 진행되면서 꼭 코끼리를 닮은 모습으로 변했다.

▲ 개머리 언덕에 텐트를 친다면 굴업도의 황홀한 일몰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으며 큰 마을을 지나 굴업해수욕장에 선다. 멀리 백아도와 굴업도 사이에 오누이의 슬픈 전설이 전해지는 선단여가 눈길을 잡아끈다. 인파의 북적임 없는 조용한 해변은 호젓하기만 하다. 해변에서 왼쪽으로는 보이는 토끼섬은 거대한 ‘해식와’(海蝕窪)로 유명한 곳이다. 해식와는 바닷물에 섞인 염분 때문에 바위가 서서히 녹아들면서 형성된 지형을 말한다. 문화재청은 굴업도 해식와에 대해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지형의 백미’라고 평 한 바 있다.

이제 굴업도의 하이라이트로 향할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굴업도를 찾는 이유는 억새가 하늘거리는 개머리언덕(초지)의 이국적인 풍경 때문이다. 야영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치명적 매력을 발산하는 장소다. 굴업해수욕장 끄트머리에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굴업도가 꽁꽁 숨겨 놓은 푸른 들판의 향연이 펼쳐진다. 과거에는 소떼를 방목하던 목장이었는데 지금은 사슴과 염소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어느새 개머리언덕 끝에 바람이 걸리고 사무치는 일몰이 황홀했던 하루의 끝을 알린다.


▲ 굴업도 민박집 주인아주머니가 일거리로 내온 삶은 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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