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군산] ‘탁류’를 따라 근대역사의 한 페이지를 걸어보다
[전라북도 군산] ‘탁류’를 따라 근대역사의 한 페이지를 걸어보다
  • 김동우
  • 승인 2015.01.22 16:01
  • 호수 27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군산은 일제 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산교육장이 되고 있다.
분명 묘하다. 어딘가 모르게 스산하다. 같은 하늘, 같은 땅, 같은 바람이지만 풍경의 질감은 빛이 바래 있다. 빛살의 굴절은 아련하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바닷가 앞 골목엔 따닥따닥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술집들이 과거의 영화를 대변하는 듯하다. 해지고 깨진 채 어깨를 맞댄 집들은 시간의 무게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오래 전 일본인들이 짓고 남겨놓고 간 도드라진 모습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만 같다. 무척 아프고 쓰라린 과거다. 두리번거리는 여행자의 그림자가 길게 골목 안을 채운다. 가만히 그들을 따라나서 본다.


군산(群山).

일본인들은 군산을 통해 수탈한 물자를 일본으로 운송했다. 현재 군산만큼 이런 역사의 흔적이 잘 보존돼 있는 곳도 없다. 도시 구석구석에서 뼈아픈 일제침탈의 역사와 관련된 유적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소설 ‘아리랑’의 배경지가 밀집돼 있는 군산 도심은 민족의 아픔과 항쟁의 몸부림을 그대로 담고 있다. 특히 소설가 채만식은 군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 ‘탁류’를 통해 일제강점기 시절의 사회적 단면을 예리한 눈으로 표현해 냈다.

▲ 일본식 가옥에서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의 삶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채만식은 소설 탁류에서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 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고 적었다.

군산에는 재미있는 지명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째보선창’은 탁류의 주 무대다. 째보선창은 선창 앞에 째보(언청이)처럼 골이 갈라진 물길이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 주장과 째보라는 실존 인물의 이름이란 설이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알 길이 없다.

째보선창을 따라 걷다 보면 조선총독부 직속은행인 (구)조선은행 건물을 만난다. 한눈에 보아도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란 걸 알 수 있는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잡아끈다.

건물 안은 당시의 이 건물의 쓰임새 등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군산근대건축관’으로 꾸며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군산근대미술관, (구)군산세관, 근대역사박물관 등도 위치해 있다.

길을 건너 월명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한산한 골목길로 접어들면 군데군데 남아 있는 고풍스런 일본식 가옥들을 만날 수 있다.

▲ 동국사는 시인 고은 선생이 출가한 절로 유명하다.
그러다 ‘초원사진관’이란 간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한석규, 심은하가 주연했던 ‘8월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한 사진관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 이 건물은 현재 여행자를 위해 영화세트장처럼 운영되고 있고, 누구나 이곳에서 영화 주인공처럼 사진을 찍어 볼 수 있다.

길은 신흥동 일본식 가옥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전라북도 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던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가옥으로 알려져 있다.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고 일본식 정원이 있는 2층 가옥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과 이들의 농촌 수탈 역사를 알 수 있다.

또 이 건물은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등이 촬영된 곳으로 군산의 명소가 된지 오래다. 근처에는 일본식 가옥체험을 할 수 있는 고우당 게스트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다.

▲ 초원사진관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 군산의 바닷가 풍경은 아직도 복고적이고 옛스럽다.
여기서 길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일본식 사찰 건축양식을 따른 ‘동국사’로 이어진다. 이 절은 시인 고은이 출가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군산은 고은의 고향이기도 하다.

채만식 탁류에서 조정래의 아리랑 그리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고은이 태어난 도시. 그곳에서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따라 걸어 보자. 우리바다에 이만한 산교육장이 또 있을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