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간월도]어리굴젓 속에서 찾아낸 현자들의 목소리
[서산 간월도]어리굴젓 속에서 찾아낸 현자들의 목소리
  • 김동우
  • 승인 2015.01.15 15:46
  • 호수 2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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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월도 일몰은 서산 3경으로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30여년 전 일이다. 현대건설은 충남 서산에 천수만 일대를 간척지로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물막이 공사에 이르자 물살은 초속 8m에 이르는 거친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쏟아 붓는 바위는 그대로 쓸려 내려갔고 공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故 정주영 회장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방법이 있었다. 폐 유조선을 마지막 물막이 공사 현장에 가라앉히는 방법이었다. 이른바 ‘정주영 공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일화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회자되며 현대건설의 불도저 같은 일처리를 상징하는 예로 자주 등장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서산 천수만 A·B지구 간척지다. 이 공사로 인해 여의도 땅에 33배에 이르는 평야가 만들어졌고, 우리나라 지도를 고쳐야 하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후 A지구 간월호 지역과 B지구 부남호 지역은 드넓은 논과 호수, 갈대숲으로 채워졌고 시베리아 등에서 먼 길을 날아온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 나무 한그루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풍경이 살갑게 다가온다.
차가 서산A지구 방조제 위를 달린다. 시야의 왼쪽은 바다고 오른쪽은 담수호인 이색적인 경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멀리 철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른다. 운이 좋다면 석양이 질 때 쯤 가창오리의 화려한 군무를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잡을 수도 있다. 붉은 하늘을 수놓은 철새 떼의 화려한 비상은 사람들의 감탄사를 절로 내뱉게 한다고.

길은 신비의 섬 간월도(看月島)로 이어진다. 물이 들어오면 섬이지만 물이 나가면 해안과 연결되는 섬으로 유명한 간월도는 ‘달빛을 본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

특히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도를 깨우쳤다고 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이곳은 물 위에 떠 있는 연꽃과 비슷하다 해서 ‘연화대’(蓮花臺)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물이 차고 붉은 낙조가 떨어지면 바다 위에서 타오르는 연꽃이 자연스레 연상될 법한 모양새다.

민낯을 들어낸 갯벌이 작은 바위섬으로 이어진다. 간월암은 섬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공간 안에 차고 거친 해풍 앞에서 꽃잎이 꼿꼿한 절개를 지킨다. 마당 주변으로 작디작은 텃밭도 보인다. 삶의 공간이자 수행의 공간일 게다. 이렇듯 메마른 바위 섬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그리고 또 봄을 기다린다.

섬은 자연의 조화에 따라 이별과 만남을 반복한다. 물이 차면 섬은 만남의 문을 닫고 절대고독 속으로 빠져든다. 성철 스님이 갓 30을 넘긴 나이에 간월암에서 2년간 참선한 이유가 다른데 있지 않을 것 같다.

▲ 간월암 기와지붕 위에 사람들의 소원성취 기원이 넘쳐난다.
▲ 간월도는 물이 빠지면 해안과 연결되고, 물이 들어오면 섬이 된다.


남으로부터 나를 가두는 고독의 절. 간월도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바다 위에 떠오를 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 해가 저문다. 간월도 낙조는 서산 3경으로 꼽힌다. 고고한 하늘이 펼쳐진다. 이제 그만 수행자들을 위해 자리를 내줘야 할 시간이다. 잠시 삶을 내려놓고 스님들의 수행과 깨달음에 대해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 간월도 굴은 질이 좋아 전국 최고로 손꼽힌다.
하지만 간월도에서 굴 맛을 보지 않고는 여행의 완성이라 말할 수 없다. 간월도 굴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바닷물이 깨끗한 환경 덕분에 육질이 단단하고 고소해 전국 제일로 친다. 특히 서산 어리굴젓은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진상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리굴젓에서 ‘어리다’는 말은 소금 간을 덜 하여 담근, 덜된, 모자람의 뜻과 함께 ‘작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무학대사가 도를 깨우치고, 성철 스님이 수행한 곳에서 입속을 간질이는 이 맛의 의미가 ‘조금 모자란 듯 살라’는 뜻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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