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가파도>> 차가운 바다에서 건져올린 뜨거운 '生'을 보다
제주도 가파도>> 차가운 바다에서 건져올린 뜨거운 '生'을 보다
  • 김동우
  • 승인 2014.12.25 14:13
  • 호수 2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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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모슬포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송악산과 용머리해안을 넘실대는 파도를 넘는다, '반대쪽 산을 보려면 이쪽 산에서 봐야한다'고 했다. 가파도로 가는 길은 그냥 바다길이 아니다. 제주도가 감춰 놓고 있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는 길이다. 바다는 푸르다 못해 검다, 그 위를 제주도의 바람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조잘거린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바람은 따뜻하다. 그리고 달다. 제주도의 바람은 언제나 새롭다. 산방산과 형제바위가 어슴푸레하게 거리를 둘 때쯤 배는 서서히 뱃머리를 내린다. 가파도의 작은 선착장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잠깐이나마 활력이 넘친다. 잠시 뒤 여객선이 등을 보이고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뜬다. 선착장은 어느새 공허함을 채워진다,

가파도는 탄소제로섬으로 전기줄 없는 섬, 신재생에너지로 모든 전기를 생산하는 섬, 전기자동차가 돌아다니는 섬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모슬포에서 남쪽으로 5.5km 떨어져 있는 가파도는 그 모양이 가오리처럼 생겼다해 가파리, 가파섬, 가파도 등으로 불렸다.

가파도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무인도로 버려진 곳이었으나, 국유 목장의 설치를 계기로 마을이 들어섰다.

특히 1653년 네덜란드 선박 스펠웰호 가파도 표류는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그 배에 승선하고 있던 핸드릭 하멜은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 '난선 제주도 난파기와 조선 국기'를 저술해 서양에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소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객선 선착장이 있는 상동포구에서 올레길 10-1코스를 따라 해안길을 걷는다. 바다 너머 최남단 섬 마라도가 배경이 되는 길은 새로운 풍경이다.

가파도는 아담한 섬이다. 둘레가 4km남짓이고 해발고도는 고작 20.5m밖에는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유인도 중 가장 키 작은섬이 바로 이곳이다. 올레길 코스도 2시간 정도면(5km)완주가 가능하다.

평지나 다름없는 길은 다시 섬 안쪽으로 방향을 튼다, 봄이면 청보리가 섬 전체를 뒤덮는 장관이 펼쳐지는 장소다. 섬은 겨울의 중심에서 다시 봄을 준비한다. 모진 바람과 추위를 이겨낸 파릇한 보리순이 땅 밖으로 수줍게 머리를 내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가파도 보리의 마음은 벌써 따스한 봄에 닿아 있는 것 같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보리순 사이로 고인돌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가파도에는 고인돌 군락지가 잘 보존돼 있다. 가파도 사람들은 고인돌을 '왕돌'이라 부르는 데 판석을 세우지 않고 지하에 묘실을 만든 다음 작은 굄돌을 놓고 그 위에 큰 덮개돌을 올려놓는 전형적인 남방식 형태다.

마을 안길을 걷는 것도 가파도 올레길만의 매력이다. 살구색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은 발걸음을 한껏 늦춘다. 답장 너머로 보이는 가파도 주민들의 삶은 살갑고 정겹기만 하다. 하나같이 빛바랜 골목을 바람이 돌아 나선다. 뒷짐을 지고 한발 한발 바람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섬의 동쪽 해안길이다.

멀리 해녀들의 바다로 나간다. 날선 파도 앞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푸른 바다에 몸을 던진다. 능수능란하게 물질을 시작하는 가파도 해녀들은 '물숨'을 쉬며 아득한 바다로 내려간다. 한동안 해녀를 기다린다. 잠시 뒤 망태기를 펼쳐 놓은 주름진 해녀는 해맑게 웃는다. 그녀가 잡아 올린 뿔소라는 그녀의 생(生)이다. 멍하니 하루의 생을 바라보는 내게 해녀는 돌멩이를 들어 소라를 깬다. 장갑으로 내장을 떼어내 얼굴 앞에 내민다. 차가운 바다에서 건져 올린 뜨거운 해녀의 생이다. 우물우물 소라를 씹는다. 운이 좋았나 보다. 가파도의 살아 꿈틀되는 현실이 내 속에서 뜨거운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내일은 배가 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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